성경공부/2017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 10 강 듣고 행하는 자

이창무 2017. 9. 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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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제 10 강 (♬ 218.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말씀 / 누가복음 6:20-49
요절 / 누가복음 6:47

듣고 행하는 자

  •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이라 하고 여기는 평지수훈이라고 불리움. 
  •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제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 1) 20~26 : 제자의 복
    • 2) 27-38 : 제자의 윤리
    • 3) 39-49 : 제자의 인격
  • 공통적으로 제자의 비범함(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을 다루고 있다. 이는 결국 선생이신 예수님의 비범함과 닿아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비범한 제자가 되자.

1. 예수님은 어떤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20,21)? 예수님 때문에 욕을 당할 때 왜 복이 있습니까(22,23)? 어떤 자들은 화가 있습니까(24-26)?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보라)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 20절. 대상은 제자들. 오늘 본문 속에 제자도의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 있음.
  • 26절까지 제자의 복과 화가 무엇인가? 4복과 4화라고 칭함. 산상수훈에는 팔복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복과 화가 대조되어 있음.
  • 복과 화를 선포한 대상은 서로 각기 다른 그룹이 아니라 한 그룹의 사람들이다.
  • 복이든 화이든 공통점은 이 세상에 통용되는 상식과 정반대의 복과 화를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다.
  • 복 있는 자 :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박해 받는 자. 불행한 자들의 대표적인 목록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자들이 복 받은 자일 수 있는가?
  • 화 있는 자 : 부요한 자, 배부른 자, 웃는 자, 모든 사람에게 칭찬 받는 자. 행복한 자들의 대표적인 목록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 자들이 화 있는 자일 수 있는가?
  • 1) 영성의 측면에서
    • 현재 가난하고 주리고 울고 박해받는 자는 마음이 겸손. 소원이 간절해 지고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고 눈물로 부르짖음으로 기도. 이런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함.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영적인 기쁨을 누림. 하늘의 복을 누리는 자가 됨.
    •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고 칭찬 받으면 영이 녹슬기 쉽다. 영적 소원이 사라진다. 영성은 황폐해지고 열매가 없다. 자기 중심적이고 되고 타인에 대해 냉담하게 되기 쉽다. 하나님을 체험함이 없어 하나님과 관계성이 멀어지게 되고 나중에 화를 당하게 된다.
    • 가난 자체가 복이라거나 부요함 자체가 화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문제다.
    • # 예를 들어 보자. 사무엘 한나와 사무엘 vs 엘리와 엘리의 아들들. 세계 다영한 지역에 흩어진 선교사 2세들의 모습 속에서 발견하는 영적인 자세의 차이.... 레아와 라헬.. 다윗의 광야 시절과 왕궁 시절... 룻은 가난하여 여호와를 찾았고, 보아스는 배부를 때 은혜를 베풀었다...
  • 2) 상급의 측면에서
    • 제자다운 제자로 제대로 살다보면 가난하고 주리고 울고 박해 받는 삶을 살게 됨. 세상을 거슬러 살기 때문에 불가피함. 그러나 하늘의 상이 있음. 제자의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뜻. 결국 예수님의 영광에도 참여하게 될 것. 제자로 인증받았다는 점에서 기뻐할 수 있다(행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인증도 상급이다. 상급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없이 제자도를 실천할 수 없음.
    • 제자도를 실천하지 않고 세상을 따르다 보면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고 칭찬을 받는 자가 될 수 있음. 현실에 적응하고 거기에 안주해 있음... 그러나 그들은 이미 받을 것(위로, 칭찬 등등)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의 상급이 없음.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그랬듯이 이런 제자들은 거짓 제자일 가능성이 높음.
    • # 예를 들어 보자. 사도들의 고난과 영광. 사명인의 삶을 사는 목자들의 상급.
    • # 가난하고 주리고 울고 박해 받을 때 슬퍼하지 말자.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고 칭찬 받을 때 자만하지 말자. 상황을 반전시키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자.



2. 원수 같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27-31)?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32-34)?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할 때 우리는 어떤 자가 됩니까(35,36)?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 여기서부터 38절까지 제자의 윤리.
  • 제자의 윤리 1 : 원수를 사랑하라.
    • 이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참아주는 독특한 사랑이다. 여기서 원수는 22절과 연관되어 복음 전파와 관련하여 배척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가리킬 수 있다. 이 세상의 보편적인 방식은 원수에게 보복하라.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잘 해주지만 나를 해치는 자에게는 복수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 그러나 제자는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한다. 이 뺨(턱)을 치면 저 뺨도 돌리며 겉옷을 가져가는 자에게 속옷도 준다. 받을 생각 없이 꾸어주고 대접 받고 싶은 만큼 먼저 대접해 주라(황금률, 적극적인 인간관계의 원리)고 하신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해 민감하게 만든다.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품으라.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말씀이다.
  • 그런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 1) 칭찬과 상을 받기 위해서이다. 제자에게는 탁월함, 수준 높은 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자가 아닌 사람들과 차별성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제자의 탁월함이란 다른 영역이 아니라 바로 사랑, 미움을 넘어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랑의 달인, 사랑의 최고봉, 사랑과 용서에서 일가견을 이룬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랑의 탁월함을 나타내는 제자에게 상급이 따를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상급도 있지만 이런 사랑이 가져올 이 땅에서의 결과도 제자의 영광과 상급이 될 수 있다. 곧 하나님의 원수 되었던 자가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미움과 적대감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유일한 길이 사랑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 2) 제자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자녀는 부모를 반영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성품과 닮아야 하며 그것을 반영해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바 있다(롬5:8). 자비하신 아버지이시다.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를 내려 주신다. 그러므로 그분의 자녀된 자들은 우리 아버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자비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은혜롭고 자비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과정을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를 생각해 보라. 십자가 상에서도 자기를 못박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우리가 한 때 원수되었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렇게 살아야 마땅하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런 사랑의 실천이 가능하다.
  • # 예를 들어 보자. 사울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복수하지 않은 다윗. 사울을 변화시킨 스데반의 기도. 아들을 죽인 범인을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 요나서의 요나... 창세기 요셉.... 
  • # 미운 짓 하니까 미워한다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제자로서는 수준 미달이다. 원수를 선대하고 사랑하는 것이 제자의 수준이다. 수준 높게 살자.

3. 왜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까(37a)? 용서하고 줄 때 무엇을 받게 됩니까(37b,38)?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 제자의 윤리 2 :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
  • 내가 비판과 정죄로 대하면 비판과 정죄가 돌아온다.. 비판은 분별과 다르다. 분별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라면 비판은 재판 석에 앉아서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비판과 정죄는 사랑을 질식시키게 한다. 사랑이 메마르게 되면 두려움 반발심 적대감 위선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낳고 결국 서로를 망치고 파괴시킨다. 하나님께서도 같은 잣대를 우리에게 내미셔도 우리는 할 말이 없게 된다. 자해 행위
  • 비판과 정죄 대신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용서하라. 용서로 대하면 용서가 돌아온다.. 주라. 주면 다시 돌아온다. 돌아올 때는 덤까지 얹어서(시장에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옷 주머니가 다 넘치도록 곡식을 넣어주듯이) 돌아온다.. 용서하고 베풀면 사람과의 관계성이 좋아진다. 나의 헤세드(자비)가 상대방의 헤세드를 불러 일으켜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오게 된다. 사람뿐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긍휼를 베푼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그것도 넘치도록 베푸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넘치도록 때로는 이것이 낭비가 아닐까 싶은 정도로 퍼주는 듯이 사랑하라.
  • # 예를 들어 보자. 룻기의 헤세드. 창세기 요셉.
  • # 우리 공동체가 비판과 정죄의 공동체가 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용서와 베품의 공동체가 되게 할 것인가 우리 각자 손에 달렸다. 지옥을 만들 것인가 천국을 만들 것인가


4.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때 어떻게 됩니까(39,40)? 형제를 비판하는 자의 문제가 무엇입니까(41,42a)? 우리는 남을 비판하기보다 먼저 무엇을 힘써야 합니까(42b)?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 제자의 인격 1 : 겸손
    • 앞에서 본 제자의 윤리는 탁월하고 수준이 높다. 자연스럽게 제자는 선생의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다.
    • 그러나 그 선생의 역할이 도리어 함정이 될 수 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 밖에 없듯이 제자의 인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 선생이 되면 자기도 망하고 인도함을 받는 양도 망하게 된다. 
    • 누가 맹인 같은 선생인가? 누가 인격이 준비되지 못한 선생인가? 자신을 절대시하고 이미 완성된 존재라는 착각에 빠진 사람이다. 자아 성찰을 하지 않는 선생이다. 교만과 자기 의로 뭉친 사람이다.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형제 눈의 티끌을 빼려 하게 된다. 이런 경우 거칠고 함부로 하다가 눈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자기 눈의 들보를 빼지 못함으로 결국 자기도 망하게 된다. 본질적으로 의로우시고 완벽한 선생은 한 분 예수님 뿐이시다.
    • 그래도 우리가 제대로 된 선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끊임없이 자아 성찰을 해야 한다. 남에게서 쉽게 찾은 죄는 대개 내 안에 있는 죄이기도 하다. 자아 성찰을 통해 자신의 허물과 약점을 깊이 깨달은 사람만이 조심스럽게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도울 수 있다.
  • 자신을 절대시하지 말아야 한다. 아직도 미완성이며 더 배워야 하는 제자인 줄 알아야 한다.
  • 목표와 기준점을 삼을 대상으로 온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야 한다.  더 많이 닮을 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품고 섬길 수 있다.
  • # 우리도 성경 선생이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 겸손과 자아성찰 그리고 끊임없이 예수님을 배우는 분투가 절실히 필요하다.


5.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는 각각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43,44)? 선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45)?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 제자의 인격 2 : 성품
    • 무화과와 포도와 같은 열매를 맺는 인생과 가시와 찔레와 같은 열매를 맺는 인생을 대조..
    • 성품이 결국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
    • 그럼 여기서 삶의 열매는 무엇인가? 주로 언어 생활에 있어서의 열매... 말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다. 혀는 영혼의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격려하고 위로의 말, 진실된 말 하는 사람은 마음 속에 사랑과 긍휼 그리고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반면 거칠고 무례하고 폭력적인 말, 거짓되고 음흉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강포와 음란과 거짓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말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제자에게 있는 말이 아주 중요하고 그 말은 성품에서부터 나온다.
    • 예수님과의 교제와 은혜 안에서 성품이 변화된다.포도나무 비유처럼 .. 다른 종교와 다르다...
  • # 목자는 말하는 것이 본업이다. 복음 전파, 일대일 성경 공부, 상담, 메시지 모든 것이 말이다. 그러므로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살리는 말을 하려면 성품을 가꾸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한다. 마음의 정원사가 되라. 

6. 우리는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무엇에 힘써야 합니까(46,47)?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무엇과 같습니까(48)?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49)?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 제자의 인격 3 : 실천
    • 예수님을 주라고 부른다면 당연히 순종으로 행해야 한다. 행함이 없다면 주여 라고 부르는 것이 무의미하고 공허한 말이 된다. 
    • 예수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 = 집을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 vs 듣고 행하지 않는 자 =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
    • 평상 시에 두 사람의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으나 탁류(우기 떄의 홍수)가 부딪칠 때 요동치 않음과 무너져 파괴됨으로 나타난다. 우리 인생의 환란이 닥쳤을 때 순종한 제자와 그렇지 않은 제자는 각각 신앙의 집이 흔들리지 않음과 무너져 내림으로 나타날 것이다.
    • 이제까지 배운 평지 수훈의 말씀을 듣고 끝나지 말고 실제 삶 가운데 순종하기에 애써야 한다. 실제 삶에 적용하기 전까지는 아직 이해된 말씀이 아닌 것이다. 묵상만 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다. 오늘 말씀 전체를 비추어 볼 때 특별히 삶에서 사랑(제자의 윤리)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 # 예를 들어 보자. 실천의 중요성과 관련된 사례들... 연습문제 풀어야 시험을 잘 본다.... 순종해야 내공이 생긴다.. 그래야 힘든 일이 있을 때 무너지지 않는다.... 
  • # 원수 같은 인간이 있는가? 적극적으로 사랑하라. 비판하고 정죄하지 마라. 대신 용서하고 베풀어 주라. 우리 공동체가 이런 사랑이 있을 때 어떤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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